

초등 80점,
의대 입시에 충분했다
1% 자녀를 이끈 엄마들

문해력과 상상력, 서사력을 갖춘
의학 인재 성장기
“MMI 준비는 한계가 있어요. 여러 질문과 답변이 모여 결국 진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게 돼요. 떨리는 시험장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도적인 답변은 거의 불가능하죠. 일상생활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서울대 의예과 이강산 어머니 조경숙 씨
“입시가 초중고 12년 동안 달리는 장거리 경주이고 결국 고교생 때 공부를 잘하는 게 중요해요.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달려버리면 쉽게 지치게 된단 말이죠. 아이가 첫째인 경우는 특히 선배 맘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어요.”
경북대 의학과 이건주 어머니 김향선 씨


최근 의대 입시 전형을 살펴보면 ‘육각형 인재’가 떠오른다. 성적 외에도 인성과 봉사 정신, 리더십 등 다양한 측면에서 균형 잡힌 인재를 선발한다.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장기간 체계적인 전략을 세워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올해 입시부터 의대 정원이 증원되고 다양한 변화와 함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의대 열풍이 거세지면서 최상위권 N수생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다. 정시 전형에서는 다중 미니 면접(MMI)이 합격의 변수로 작용하고, 수시 전형에서는 다수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상향시켰다.
치열한 입시 전형을 통과한 의학 인재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조경숙 씨의 자녀 이강산 씨는 서울 강남 학군지의 자사고(중동고)에서 약점 없이 완벽한 내신 성적(1.13)과 생기부로 서울대 지역균형선발 전형 의예과에 합격했다. 김향선 씨의 자녀 이건주 씨는 경북대 의학과에 정시 논술전형을 치르고 6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이들이 합격을 위해 오랜 시간 걸어온 길에는 흔히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거쳤을 것 같은 단어들이 여럿 빠져 있다. 대신 세상의 유행에 묻혀 잘 들리지 않지만 과거부터 미래까지 전 세계 석학들이 항상 중요하다 강조하는 여러 단어들이 빛나고 있다.
선택과 집중, 자기주도학습으로 완성되는 의대 입시 득점력
집중력과 자기주도학습.의대에 합격한 자녀가 공부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두 어머니는 합격 비결로 이 두 단어를 꼽았다. 의대 입시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경쟁터다. 최상위 수준의 성적과 일반 상위 수준을 가르는 한끗 차이의 비결인 셈이다. 이들은 “똑같은 시간을 공부에 할애해도 어떻게 공부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며 오랜 시간 앉아서 공부량만 늘리는 것보다 효율적인 공부법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경숙 씨는 ‘자신의 취약점을 파악해 설계하는 공부법’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정의했다.
“내가 잘하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에 시간을 분배하는 계획을 남이 세워 줄 수 없거든요. ‘너는 수학을 잘하니까 수학은 5시간만 공부하고 영어는 못하니까 10시간을 공부해라’ 이렇게 엄마가 다 가르쳐줄 수는 없잖아요. 아이가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연습을 늘 했어요.”
김향선 씨는 ‘집중력을 키우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힘’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설명했다. “아이에게 합격 비결을 물었어요. 자기주도학습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자기가 자기주도학습을 처음 시작한 때가 고3 때라고 평가했어요. 10시간 공부했다고 양을 자랑하는 것보다 5시간 질적으로 집중하는 게 더 중요했다고요. 집중력을 키워야 되는 거죠.”
인성은 의대 입시를 통과하는데 필요한 또 다른 핵심 단어이자 주요 요소다. 의대 입시 전형인 다중 미니 면접(MMI)에서는 여러 가지의 개별 질문으로 수험생의 성품과 리더십, 자질을 평가한다. 의사로서 지녀야 할 협력과 배려와 같은 정신을 체화했는지 꼬리를 무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답변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기로 유명하다. 강산이 역시 1차 답변에 대한 준비까지만 했을 뿐 이어지는 질문에는 평소의 모습과 가치관을 그대로 내보이며 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Q. MMI답변에 평소의 어떤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조경숙. 강산이는 인성면에서 가장 큰 장점이 아는 것을 많이 나누는 아이였어요. 나만 시험을 잘 보고 나만 성적을 잘 받는 것을 추구하는 아이가 아니고, 내가 아는 것은 친구들도 같이 볼 수 있도록 나눴어요. 자기만 갖고 있는 최근 3개년치 학교 기출 문제 자료도 친구들이 같이 나눠서 보자고 했을 때 흔쾌히 다 보여주고 나눠주고 같이 봐요. 혼자만 보면 유리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자기보다 성적이 잘 나온 친구들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축하하고요. 이런 일상에서의 경험, 또 가정에서도 가족 간 소통하고 배려했던 경험들이 MMI 답변에 묻어났다고 해요.
Q. 학교라는 경쟁 사회에서 쉽지 않은 결단이네요. 어떻게 교육했나요?
조경숙. 지금 내신 9등급이라는 체제가 있기 때문에 학교가 경쟁 사회가 됐지만요. 친구들과 함께 협력하고 함께 공부해도 잘할 수 있다고 집에서 많이 이야기 나누고, 아이가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을 때 칭찬했어요. 가정에서도 어려서부터 가족 간 서로 배려하고, 커가면서 만나는 선생님을 공경하도록 지도했어요.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쌓아온 진짜 아이의 모습을 가서 보여주는 거죠.
엄마가 열어주고 아이가 키워나간 상상력과 문해력
강산이와 건주 모두 자유롭고 행복한 유아기를 누렸다. 두 엄마의 교육관이 같았다. ‘위험한 경우만 빼고 최대한 자유롭게’. 아이들은 세상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마음껏 경험했다. 조씨는 “못하게 하는 것의 폭이 좁다보니 아이가 행복했다”고 했다. 명절에 고스톱을 해보고 싶어 하면 규칙을 배우는 거라 생각하고 시켜봤다. 삼겹살을 먹다가 상추를 구워보기도 했다. “아이가 관심 없어 하는 다양한 유아교육도 늘 도전했어요. 해봐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테니까요.” 건주는 엄마가 주방에서 일하는 저녁이면 프라이팬과 냄비를 꺼내서 식탁 위에 올라가 놀았다. 쓴웃음이 났지만 엄마는 그냥 놔뒀다. 김씨는 “유아기 이전 아기 때부터 늘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규칙적인 책읽기도 이 시기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누워 있는 아기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부터 시작으로 매일, 매주 도서관이나 서점을 데려갔다.
Q.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두각을 드러냈나요? 이 시기 중시한 교육은 무엇인가요.
김향선.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어요. 유아 때부터 똘똘하다 생각해 왔는데 학교에서 시험 보면 수학 80점대라 의아했죠. 하지만 개의치 않고 매일 공부습관 잡는데 주력했어요. 아이가 자신감을 갖도록 100점 맞는 경험을 하게 도왔어요. 여러 대회도 내보내고, 영재교육원 수업도 받았어요. 책읽기와 영어, 수학을 6년간 꾸준히 하도록 했어요.
조경숙. 검사를 받으면 지능이 높다는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연필로 글씨를 잘 써보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게 놀았어요. 체력과 독서, 학습 습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기초를 튼튼하게 쌓기 위해 학원이든, 체험이든 진득하게 2년부터 5년까지 꾸준히 다니고 배웠어요.
의대 입시가 목표라면 초등학교 때 수학과 영어를 선행하는 것이 이상적일까. 조씨는 “의대 입시를 초등부터 준비한다는 말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잘라 말했다. 성실하게 국어, 영어 수학 등 필요한 과목들을 수년간 차곡차곡 공부하다가 보면 최종적으로 그 결과물이 의대가 되는 거라는 설명이다. “학습 목표란 의대가 아니라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여야 해요. 벅차하는 순간에 멈추는 거죠. 하지만 일반적인 지능과 성실함이 있다면, 6개월에서 1년 선행 정도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봐요.”
김씨는 “입시가 초중고 12년 동안 달리는 장거리 경주이고 결국 고교생 때 공부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며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달려버리면 쉽게 지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적절하고 현실적인 속도에 맞춘 엄마의 정보력을 강조했다.
“초등 고학년부터는 입시와 학원 정보를 엄마가 미리 알아보고 그 진도에 맞게끔 적당한 선행학습도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어느 정도 선행을 하지 않으면 중학생이 됐을 때 대형 학원을 다닐 수가 없어요. 진도가 맞지 않거든요.”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학업과 진로 서사력
긴 입시기간 동안 사춘기와 공부슬럼프도 찾아왔다. 건주는 중학생 때 치열한 사춘기를 겪었다. 초6부터 중1 입학하기 전의 전환기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겼다. 매일 주어진 공부량을 채우기 힘들 때 정답을 베껴 문제집을 풀어놓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중1 때 성적이 20점대, 30점대가 나온 과목이 있을 정도로 중하위권까지 성적이 떨어졌다. 강산이는 영어 교과의 빈틈을 스스로 느꼈다.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꾸준히 4대 영역 채우면서 놀이처럼, 부담 없는 공부처럼 해왔지만 다른 과목에 비해 입시형 대비가 부족했다.
Q. 그 시기를 어떻게 넘기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향선. 끝까지 인내와 믿음으로 아이가 잘 헤쳐 나오기를 기다렸어요. 동기부여를 위해 리더십센터의 도움을 받기도 했고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중3 때 특목고를 목표로 공부하기도 했는데 이 때도 입시에는 실패했죠. 그런데 이때 공부한 내공이 중3 후반부터 올 1등급으로 나타나면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어요.
조경숙. 중 3때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로 마음먹고 1년간 엄격한 영어학원을 다니며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시간도 많이 썼고요. 그래서 영어성적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Q. 학창시절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학년의 방학이 언제인가요? 어떻게 공부했는지요.
조경숙. 중3 방학이 중요해요. 고교 성적은 중등 성적의 2배로 떨어진다는 식의 말에 불안도 커요. 그래서 흔히 잘못된 판단으로 과도한 선행을 하기도 해요. 수학(상/하)와 수학Ⅰ,Ⅱ를 대략 공부하면서 미적분을 배우는 식이죠.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치르는 첫 수학시험은 ‘수학(상)’이에요. 수학(상/하)가 완벽하게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수학Ⅰ,Ⅱ가 있을 것이고 그 위에 미적분이 있는데 수학(상/하)와 수학Ⅰ,Ⅱ를 대략 하고 미적분을 한 번 돌고 가야 된다 생각하고 중3 때 미적분을 해요. 저는 이게 독이라고 생각해요. 고1 수학(상) 성적을 최고로 끌어올려야 가능성도 가질 수 있고 내 목표 설정을 하니까요. 불안해도 미적분보다 고1 수학을 탄탄하게 공부할 것을 추천합니다.
Q. 공부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했나요?

김향선. 중2 때 아이가 큰 결심을 했어요. 오랫동안 즐겨 했던 게임을 끊고 스스로 없앤거죠. 그런데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어요. 그러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랩이랑 댄스를 배워야 되겠다는 거예요. 원하는 학원도 미리 알아뒀길래 알겠다고 했어요. 따로 선생님을 찾아 6개월 동안 카페에서 토요일마다 랩을 배우게 해줬어요. 충분히 배웠다 싶던지 스스로 종료하더니 그 다음부터 공부에 몰입하더라고요.
엄마도 입시 문해력이 필요하다
입시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두 어머니는 설명회와 컨설팅 등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 활용했다. 조씨는 강산이가 고1이 되면서부터 설명회를 많이 찾아다녔다. 복잡하고 어려운 어휘가 가득한 설명을 현장에서 듣고 보고 난 뒤, 모집요강 전체를 다운 받아 출력해서 반복해서 공부했다. 중요하다 싶은 내용은 아이에게도 보여줬다. 조씨는 “아이가 그걸 다 할 수 없다”며 “내가 그걸 대신하고 요점정리만 아이에게 보여주면 건성으로 본다. 성에 안 차지만 그냥 뒀다”고 했다. 아는 것만큼 들렸다. 한번 가서 이해가 안 되면 한 번 더 가보는 식으로 정성을 쏟았다.
“입시 정보를 맹신하기보다 참고자료라고만 생각했어요. 그 참고자료가 한번씩 생각날 때가 있어요. 내가 고민하는 시점에서 아이의 어떤 부분을 결정할 때 유용해요. 알게 된 정보를 주위와도 많이 나눴어요. 또 1, 2년에 한번씩 전문가의 객관적인 분석도 받아봤어요. 성격 검사, 지능 검사, 진로 적성 검사 등도 중1, 2가 적기인 것 같아요.”
건주는 중3에 들었던 특목고 입시설명회가 적기의 동기부여가 됐다. 고교 진학을 놓고 고민할 때도 인근 학원의 원장님이 아이에게 좋은 조언을 주었다.
김씨는 “사교육의 방대한 정보와 발빠른 움직임을 잘 활용하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다”며 “컨설팅도 설명회도 열심히 듣고 정보를 공유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학원 선생님들과도 수시로 긴밀하게 소통했다”며 “그 덕에 아이의 공부타이밍을 잡아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1% 자녀를 이끈 엄마들의 밸런스 게임
